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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서공 터 잡기
공조전서 입향 기적비

전서공(典書公) 류종혜(柳從惠)는 풍산 상리(上里)에 세거하다가 길지(吉地)를 찾아 하회마을에 터전을 이루었다. 전서공이 하회마을에 온전히 자리 잡기 까지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사실 풍산 류씨들이 하회에 터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전서공이 하회에 들어오기 이전부터 준비되었다. 전서공의 할아버지이자 고려의 도염서령(都染署令)이라는 벼슬자리에 있던 류난옥(柳蘭玉)운 풍수가를 찾아가서 집을 지을 새로운 터를 물었다. 풍수가는 그에게 3대 동안 적선을 한 뒤에 훌륭한 길지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류난옥은 하회마을 동구 밖에 관가정(觀稼亭)이라는 집을 짓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적선을 베풀었다. 이 공덕은 아들과 손자 대까지 이어졌다.

전서공 또한 할아버지의 뜻을 이었으니 적선의 공덕으로 하회마을에 자리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풍산 류씨가 하회에 터를 잡게 된 내력은 마을 입구에 있는 전서공 류종혜의 기적비(紀蹟碑)에 자세히 새겨져 있다.

전서공이 화천(化川)가에 터를 잡을 당시에는 이 일대가 울창한 숲과 늪으로 밀림을 이루었다고 한다. 지금의 삼신당 곁에 절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호랑이가 자주 나타나서 중들이 견디지 못하고 떠나 버려서 절이 사라졌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 절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탑신(塔身)들이 삼신당 주변에 한둘 흩어져 있는데, 지금도 그 탑신 가운데 하나가 삼신당의 제단(祭壇)처럼 이용된다.

기록에 의하면 전서공은 하회에 자리 잡기 위해 화산(化山)을 오르내리며 답사했다고 한다. 여러 번의 답사 끝에 전서공은 화산 주변의 허씨와 안씨의 묘지를 피하여 울창한 숲을 헤치고 절 주변에 터를 잡았다고 전해진다.

풍산 류씨가 하회에 터 잡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이것은 곧 류씨들이 안씨들보다도 마을에서 터를 잡지 어려웠음을 알 수 있다. 이미 허씨와 안씨, 그리고 절이 터 잡고 있는 화산자락에 들어와 살려고 하니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 어려움은 전서공이 본격적으로 집을 짓으려고 할 때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