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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당

양진당은 풍산류씨 대종택이자 보물 306호로 지정되어 있다. 입암 류중영 어른의 호를 따서 입암고택(立巖古宅)이라고도 부른다. 양진당이라는 명칭은 겸암 류운룡 6대손인 류영 어른의 호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입향조인 류종혜 선생이 터를 잡았으며, 임진왜란 전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一’자형에서 임진왜란 이후 안마당 남쪽과 동서쪽에 각각 중문간채와 익사(날개집)를 증축하여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1650년경 솟을대문과 사랑채를 건축하였는데, 사랑채는 불천위 제사 등 유교적 제례 용도로 사용되었다. 사랑채 건축 이전에는 중문간채 동쪽 공간이 작은사랑으로 사용되었다 한다. 양진당은 마을에서 보기 드문 정남향이며, 원래 99칸이었으나 현재는 53칸만 남아 있다. 집안에 사당이 2채 있는데, 류중영·류운룡 부자를 한 사당에 모실 수 없다 하여 각각 1채씩 사당을 짓게 되었다.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마당인데, ‘입암고택’ 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안채 벽에는 크기와 용도가 다른 다섯 개의 문이 있으며, 사랑채 대청은 각종 행사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안채는 정면 7칸, 측면 2칸이고, 서쪽부터 부엌, 안방, 대청, 작은방을 두었으며, 방과 대청 앞 중간에 퇴를 달았다. 천장이 높은 안채와 익사에는 다락을 두고 창을 달아 여러 층의 모습처럼 보인다. 사랑채는 높은 기단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원주를 세웠다. 지붕은 기와로 하회마을에서 보기 드문 겹처마이며, 팔작지붕(삼각형의 벽이 있는 지붕 형태)이다.

사당 너머로 마을의 역사를 말해 주듯 수령이 800여 년 이상 된 거대한 느티나무가 보이는데, 동신으로 모시는 '삼신당'이 자리잡고 있다. 학록정사 옆으로 난 좁은 골목으로 진입할 수 있다. 원래 하회마을에는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마을 외곽에 있던 나무는 화재로 소실되었다 한다. 현재도 타고 남은 일부가 남아 있어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