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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암

수암은 서애 류성룡의 셋째 아들 수암 류진 선생이 아호로 삼은 바위로, 하회마을 남산 수봉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수암 선생은 선조 40년(1607) 26세 되던 때에 부친상을 당하고, 이후 31세 때 겨울 선친의 기억이 남은 옥연정사로 거처를 옮겼는데, 이 무렵에 자신의 아호를 마련한 것이다. 수암은 이후 줄곧 고향에 살다가 36세 되던 해 상주 가사리에 새로운 터전을 잡았다. 이때 서애 선생의 제자인 우복 정경세, 창석 이준 선생이 격려차 방문한 기록이 있다.

류진(柳袗)선생[1582년(선조 15년)-1635년(인조 13년)]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본관 풍산(豊山), 자는 계화(季華), 호는 수암(修巖)이다. 1610년(광해군 2년) 진사시에 장원으로 합격하고, 1612년 김직재(金直哉)의 무옥 때 무고를 받아 5개월간 옥고를 치렀으며 이덕형(李德馨), 심희수(沈喜壽) 등의 변호로 풀려났다. 1616년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세자익위사세마(世子翊衛司洗馬)가 되었다. 인조반정 뒤 봉화현감(奉化縣監)이 되고 이어 형조정랑(刑曹正郞)이 되었으며, 1627년(인조 5) 허위보고를 하였다 하여 청도군수(淸道郡守)에서 파직되었으나, 1634년 재등용되어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이 되었다. 병산서원(屛山書院)에 부친인 성룡(成龍)과 같이 제향되었으며, 문집에는 『수암집(修巖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