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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봉정

>류성룡의 호인 서애는 하회마을의 서쪽 화천 건너에 있는 벼랑이고, 그 위에 상봉정(翔鳳亭, 1662년(현종 3) 건립)이 있다. 먼저 양진당과 충효당을 지나 남산을 바라보면서 똑바로 길로 나오면 화천과 만나게 되고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돌아들면 커다란 느티나무와 마주한다. 이 고목과 마주하여 강을 건너다보면 산기슭에 정자가 보이는데 이 정자가 상봉정이다.

서애 류성룡은 이곳을 흡사 봉이 하늘을 나는 형국이라 하여 상봉대로 이름 짓고, 정사를 지으려 하였으나 재력이 없어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지명을 자호로 삼았다. 그 뒤, 겸암 류운룡의 증손으로 현감을 지낸 회당 류세철이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상봉정을 세웠다. 정자는 류세철의 증손자인 양진당(養眞堂) 류영(柳泳, 1687-1761)에 의하여 중수됐으나 1755년의 대홍수로 모두 쓸려나가 없어졌다. 그 후 중건되었으나 중건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중건기를 쓴 류일춘(柳一春)의 생몰 연대와 관련지어 짐작해보면 대략 1700년대 후반에서 1810년 이전으로 추정된다.
류성룡은 상봉대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상봉의 이제 이름이 좋구나.


서애의 옛 길을 따라 빗겨 있도다.


이곳에서 장수(藏修)하자고 일찍이 약속하였기에


산수는 여전히 정(情)을 머금고 있구나.


바위 오래고 외로운 소나무도 늙어 있고


강은 텅 비고 조각달만 밝아라.


소년 시절에 어르신을 모시고 왔었지


추억하자니 눈물이 갓끈을 적시네.




류성룡은 마을의 서쪽 언덕이라는 지명[西厓]을 스스로의 호(號)로 삼았다. 그리고, 류성룡의 형인 겸암(謙菴) 유운룡(柳雲龍, 1539~1601)의 증손인 회당(悔堂) 유세철(柳世哲, 1627-1681)이 그러한 유서가 깃든 자리에 도학을 연찬하고 강론하기 위하여 정사를 세웠다. 회당은 한 척의 나룻배를 마련해 두고 마을에서 상봉정을 왕래하면서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하였다고 한다. 상봉정은 풍천에서 광덕을 지나 일직 가는 길로 가다가 겸암정 안내 표지판을 그냥 지나쳐 200여m 더 가다보면 오른쪽 언덕 길가에 바싹 붙어서 조용히 서 있다. 더구나 굽이돌아 나가는 길가에 있으므로 자칫 그냥 지나치기 일쑤이다. 지금은 지방도로가 지나는 곳이지만 옛날에는 그냥 매우 가파른 언덕이었고, 봉이 날아오를 듯한 형국이었다.

현재 하회마을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부용대에 올라 하회마을을 내려다본다. 그런데 상봉정 앞에서 하회를 바라보면 부용대 위에서 하회를 바라보는 풍광과는 다른 풍광이 펼쳐진다. 부용대에서 바라보면 화산이 마주보이고, 마을 그리고 태극형으로 돌아나가는 물길이 아래로 내려다보인다. 하지만 상봉정 앞에서 보면 오른쪽으로는 병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길이 마을을 감싸 돌아들어 오는 풍경이, 정면으로는 화산을 등지고 물길로 감싸인 마을 전체와 강가의 백사장이, 왼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깎아지른 부용대 절벽과 푸른 만송정 솔 숲 사이를 돌아나가는 물길이 한없이 정겹다. 부용대와 더불어 하회마을을 잘 조망할 수 있는 장소이다. 하지만 상봉정은 잠겨 있고, 차가 오가는 길가에서 풍광에 그윽하게 눈길을 주기는 좀 번거롭다.

졸재 유원지가 그려낸 하회 16경 중 8경 도잔행인(道棧行人)이 바로 상봉정 가파른 비탈길을 지나는 행인 구경이라고 한다. 마을에서 보면 그 가파른 비탈길을 지나는 행인이 구경거리가 될 정도로 그 풍광이 뛰어났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잔행인에 관한 권덕수(權德秀, 1672~1759)의 시와 1734년 양계산인(陽溪散人) 이복(李馥, 1626∼1688)이 쓴 시를 소개한다.



강가를 따라 돌길 잔도가 열려 있어


높았다가 낮았다가 한 선으로 또렷하네.


행인이 등짐 지고 지나간 뒤


죽죽 뻗은 산 그림자 굽어 돌아가네.


- 권덕수




잔도가 마을 외곽에 매달려 있어


똑똑히 행인을 헤아릴 수 있구나.


가는 곳 어디인지 알 수 없으나


왕래하는 사람 꾸준히 보이네.


가랑비 오면 도롱이 걸친 사람,


석양엔 땔감 진 사람도 가네.


길 가파르니 어깨 쉴 겨를 없고


강이 그윽하여 길 묻는 이도 드물구나.


조용히 앉아서 바쁘고 한가함을 견주어보니


도모함 없는 것이 곧 몸을 평안히 함이로다.


- 이복


이제 하회에서 상봉정 쪽을 바라보아도 옛 도잔행인의 풍광을 짐작하기는 어렵다. 가파른 비탈이었을 자리에 양수장이 자리 잡고, 그 위로는 지방도로가 지나기 때문이다. 지금은 차라리 상봉정 자리에서 마을과 주변을 바라보는 풍광을 권한다. 상봉정은 하회마을을 넉넉하게 바라볼 수 있는 아주 좋은 장소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