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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틀(의생활관련)
베틀(의생활관련)

하회마을에서는 삼베를 짜는 사람은 거의 없었던 반면에, 무명은 많이 생산했다. 무명은 목화송이로 실을 만들어 길쌈한 것이다. 그러나 1970년대에 나일론 옷감이 보급되면서 무명길쌈을 하지 않게 되었다. 무명길쌈이 성행하던 시절에는 매년 목화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목화를 심는 양은 일정하지 않았고, 필요에 따라 마지기 수를 달리하여 지었다. 무명은 서민층에서 더 많이 사용한 옷감이다. 양반 집안에서는 일꾼을 시켜서 목화농사를 짓기는 했지만, 직접 길쌈을 하거나 무명으로 만든 옷은 잘 입지 않았다고 한다.

무명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목화를 재배해야 한다. 봄 초에 목화씨를 뿌린 후 7월이 되면 목화꽃이 핀다. 8월에 목화꽃이 여물어서 벌어지면, 하얀 명이 나온다. 가을에 목화솜을 따서 말린 후 쐐기로 씨를 뺀다. 솜들을 모아서 활로 탄 다음에 명가락을 만들어서 물레에 자아서 실을 뽑는다. 뽑은 실로 베를 날아서 새(升) 수와 길이를 정한 다음, 베를 매어서 풀칠을 하여 도투마리에 감은 다음 베틀에 도투마리를 올려서 베를 짠다. 옛날에는 집집마다 베틀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직접 길쌈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직조기라는 개량베틀이 들어왔다. 그래서 해마다 무명을 짜서 새옷을 지을 수 있었다. 목화실로 길쌈한 무명 중에서도 좋은 것이 있고, 나쁜 것이 있었다고 한다. 12새, 13새로 짠 무명은 아주 고와서 무명으로 만든 옷감 중에서도 가장 좋다고 한다. 무명 중에서도 ‘꿀떡새’라고 하는 것이 가장 낮은 옷감인데, 이것으로 지은 옷은 가난한 사람들이 입고 다녔다.

옛날에는 목화실을 뽑기 위한 일들을 손수 했지만, 차츰 세월이 좋아지면서 풍산시장에 있는 실 뽑아주는 가게를 이용했다. 수확한 목화솜을 머리에 이고 가서 품값을 주고, 무명실로 만들어 왔다고 한다. 1970년대부터 나일론옷감을 구입하게 되면서 길쌈을 하지 않았다. 그 이후부터 목화농사가 줄어들게 되었고, 조금씩 수확한 목화솜은 모아두었다가 이불을 만들 때 썼다. 가정에서 필요한 이불을 만들기도 했지만, 보통 딸을 시집보내기 위한 이불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하회마을의 여성들은 나일론이나 백프로가 처음 나왔을 때 신기했다고 한다. 백프로가 나왔을 때는 그것으로 만든 겹치마, 겹저고리를 입고 외출을 많이 했다. 그 당시에는 부녀자들의 바깥출입이 어느 정도 허용되었기 때문이다. 동네에 한 사람이 나일론 옷감을 사오자 다른 부녀자들도 시장으로 가서 나일론 옷감을 사오기 시작했다. 틈만 나면 시장으로 가서 나일론이나 백프로를 사왔다고 한다. 무명은 겨울철에 입던 옷과 이불에 많이 쓰였다. 특히 서민층에서 많이 사용되었던 무명은 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옷감이었다. 1970년대 이후 나일론 옷감이 보급되자 무명을 만들기 위해 직접 길쌈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 이후로 무명을 만들던 풍습은 없어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