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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제(당제)

동제(당제의 진행)

매년 정월 대보름이면 하회사람들은 동제(당제)를 지낸다. 새벽 6시 주민들은 화산에 자리 잡은 서낭당으로 모여 서낭신을 위한 동제(당제)를 올린다. 서낭당에서 동제(당제)가 끝나면 그 자리에서 음복(飮福)을 하고, 산주와 제관 한두 명이 미리 국신당으로 내려가 제를 올린다. 국신당에 제를 올리면 마을 한 가운데 자리 잡은 삼신당으로 가서 제를 올린다. 국신당과 삼신당제는 서낭당제보다 간소하다. 서낭당-국신당-삼신당의 제를 모두 마치면 정월 대보름날 하회마을 동제(당제)가 끝난다.

하회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대보름날 동제(당제)를 지낸다. 하회에는 모두 세 곳의 당(堂)이 있다. 화산 능선에 자리 잡고 있는 서낭당과 마을 동쪽 당말개에 자리 잡은 국신당, 마을 한 가운데의 삼신당이 바로 하회사람들이 섬기는 당이다. 원래 하회에는 다섯 곳의 당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과거에는 서낭당, 국신당, 삼신당과 큰 고개와 작은 고개의 성황당을 함께 섬겼다고 한다. 하지만 도로를 넓히면서 큰 고개의 성황당이 훼손되고 작은 고개를 사용하는 사람이 크게 줄어들면서, 큰 고개와 작은 고개의 성황당은 기억 속에서 점점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2008년 정월 대보름날 하회마을 동제(당제) 풍경을 살펴보자. 새벽 6시가 되자 주민들이 마을입구에 하나 둘 씩 모이기 시작했다. 아직 칠흑같이 어두웠지만 주민들은 귀신같이 길을 찾아 서낭당으로 올라간다. 10여분 동안 산을 오르니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주변을 깨끗하게 청소해 두었다. 얼마 뒤에 산주(山主) 김종흥(남, 57세)씨와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원이 제물을 지고 올라왔다. 옛날에는 마을사람들이 하회별신굿의 하나로 하회별신굿탈놀이를 놀았기 때문에 보존회라는 것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별신굿이 사라지고 탈놀이만을 복원하게 되면서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라는 것이 생겼다. 그래서 보존회원들이 동제(당제)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이장과 보존회원이 짊어지고 온 제물을 차리는 동안에도 주민들이 동제(당제)에 제관으로 참여하기 위해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제물로는 백설기와 흰 밥, 세 가지 채소, 탕국, 익히지 않은 어물, 과일을 올린다. 제물이 모두 준비되자 산주와 제관이 제를 올리기 위해 당 앞에 모여들었다. 산주는 당 안으로 들어가 기름 종지에 불을 밝히고 향을 피운 다음 모두 절한다. 산주가 술을 올리고 다시 절한 다음, 산주가 축문(祝文)을 읽는다. 축문을 읽을 후 모두 절을 하고 산주가 마을을 대표해서 소지를 올린다. 보통 소지가 타면서 하늘 위로 무난하게 올라가면 좋다고 여긴다. 산주가 소지를 올린 후에 개인적으로 소지를 올리고 싶은 사람들은 당 안으로 들어가 소지를 올린다. 소지를 올리면 서낭당제는 일단 마무리 된다. 제를 마치면 제관들은 모두 모여 음복(飮福)을 한다. 음복이란 제사를 마치고 제사에 참석한 사람들이 제수나 제주를 먹는 것을 말하는데, 제사 음식을 먹으면 복을 얻는 것이라고 여긴다.

제관들이 음복을 마치기 전에 산주는 서둘러 산을 내려가 곧장 국신당으로 향한다. 동제(당제)를 맡아보는 산주는 국신당과 삼신당제를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 산주와 함께 제관이 한 둘 따라나선다. 따라간 제관은 명주실을 감은 명태포를 국신당 제단에 올리고 산주와 함께 제를 올린다. 제의 절차는 향을 피우고 절을 한 다음에 술을 올리고 다시 절을 하는 것이 전부이다. 서낭당제처럼 축문을 읽는다던지 소지를 올리지도 않는다.

마을사람들은 동제(당제)를 지내는 것은 마을의 안녕을 비는 것이라고 여긴다.



조사자: 마을 분들이 마을 제사지내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보자: 뭐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왔기 때문에 마을에서 인제 계속 인제 우리 안녕을 위해서 제를 올리는 거지 뭐요.

조사자: 동제지내는 것을 반대하거나 이러는 분은 없으시고요?

제보자: 그런 분은 없습니다. 그런 분은 없고요. 사람이 없다보니까 저 높은 산에 가가주고 그래 한다는 것이 조금, 여 여기 있는 사람들이 못 간다는 게 그게 좀 안타깝지요. 장은 우리가 우리 마을에서 제 올리는 준비는 우리 마을에서 준비를 합니다. 대신 인제 하회탈놀이 거 팀들이 와가주고 그 제를 올리지요.


[류희준(남, 50세), 2008년 정월 대보름 조사자료.]


국신당제가 끝나면 산주와 제관은 마을 한 가운데 자리 잡은 삼신당으로 향한다. 삼신당제는 국신당제와 같은 제물을 차리고 절차도 같다. 삼신당제를 마치면 산주와 제관의 제의는 모두 끝난다. 동제(당제)가 모두 끝나면 주민들은 마을회관에 모두 모여 잔치를 벌인다. 젊은 부녀자들이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연세가 많은 남자 어르신들이 방에 모여 동회(洞會)를 연다. 동회에서는 지난해 마을에 있었던 일을 보고하고 올해에 있을 대소사를 의논한다. 이 날은 남녀노소 누구나 모여 준비한 음식을 먹고 편을 나누어 윷놀이를 하며 즐겁게 논다.

여기에서는 동제(당제)가 어떤 순서로 진행되는지 살펴보았다. 하회마을 동제(당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전승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또 동제(당제)의 순서를 통해 하회마을 당체계가 서낭당-국신당-삼신당의 삼당(三堂)체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서낭당제의 제물과 절차는 다른 당에 비해 두드러진다. 이것은 곧 주민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서낭신과 서낭당은 공동체신앙 뿐만 아니라 하회에 전승되는 설화에서도 두드러진다. 따라서 서낭신과 서낭당은 하회마을문화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동제 축문

하회에서는 매년 정월 대보름날 서낭당과 국신당, 삼신당에 동제(당제)를 지내는데 서낭당제를 지낼 때 산주는 서낭신에게 고하는 글을 읽는다. 이 제문에는 하회마을에 터 잡은 내력과 현재 마을의 상황, 서낭신에게 바라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1983년 당제 축문]

유세차 갑자 정월 병인삭 십오일 경진 하회 동민 일동은 성심으로 동심합역하야 근구 주과 포어하야 벽대 경고우 무진생 성황님 전하오니 복원 성황님은 불수 지찬이라도 만반진수 생각하시고 반가이 흠양하시옵기 엎드려 천만 축원하옵니다. 복원 성황님께서는 오래동안 저이들이 성황님의 하늘 같은 덕택을 입사와 오늘까지 무사 태평하옵게 지내오니 하햇갓아온 은해를 었지 만분지 일이라도 갑사오리가만은 성황님 하늘 같은 은덕으로 금년에 새로 만만복록을 입사옵기 바라옵고 오늘날 저이들이 소소한 정성을 드리오니 복원 성황님은 아무쪼록 남북이 통일되며 전쟁이 끝이고 평화가 도라와서 여러 사람들이 안락 태평하게 하시옵기 천만 복출하옵고 더구나 우리 하회일동 남녀노소를 물론하고 한 사람이라도 치폐없이 무사 태평하게 하여 주시옵기 천만 복축 복망하옵니다.

금년 일 년 내에 어느 가정이라도 전부 한 가정같이 무사 태평하여 전 가정이 일 년 내에 만병이 없이 평안하게 하시옵고 재수대통하고 흉한 약운은 멀리 가고 좋은 복록과 즐거운 경사 도라오게 하시옵고 집에 잇을 때는 한 가정이 화락하고 출입하거든 만사 절로 잘 되어서 몸이 편하고 운수대통하게 하여 주시옵고 어려운 사람 부자되게 하시옵고 자손없는 사람 옥동자가 많이 나게 하여 주시옵고 멀리 나간 자손들 수이 무사 편안하게 도라와서 부모형제 숙질간 질거이 상봉하게 하여 주시옵고 천만 가지가 모두 잘 되어서 운 수 불길하든 사람들도 만사가 절로 순하게 펴여서 잘 되게 하여 주시옵고 농사 짓는 사람은 풍년되여 일 년에 천만석씩 싸아 노캐하여 주시고 상업하는 사람들은 하루에 천만 금씩 생기도록 하여 주시고 국가공무에 힘쓴 사람 공중사업에 힘쓴 사람 개인 직업에 힘쓴 사람 모두가 일년 삼백육십 일에 병 없고 재수대통하여 만복이 절로 도라와서 한시라도 근심걱정없이 하여 주시옵기 천 만 번 업드려 받자옵고 억만 번 정성껏 비나이다.

복원 복축 성황님께서는 국태민안하고 사화세풍되며 우마육축이 번성하고 병든 사람이 절로 낫고 안된 세상 멀리가고 착한 사람 모여들고 악한 사람 착하게 되어 우리 하회일동 여러 천만 사람들이 금년 일 년 내에 만복이 절로 오고 천만 가지 근심걱정 봄눈 녹듯 없어져서 일 년동안 여러 사람 태평화락하고 자손번창하고 부귀영화로 내내 지내게 하여 주시옵기를 업드려 바라옵고 대강원정 드리오니 밝으신 성황님은 굽어 살피시고 서사 흠향 하옵소서.


[2008년 동제 축문]

무자년 정월 보름날 부락 대표 김종흥. 찬과 술과 정결한 어가로 제물을 차려놓고 무진생 서낭님 신령님께 고하나이다. 천하만물지중 유인이 계기라 하였고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서 만수무강 행복을 누리도록 천지신명에게 바라는 것이 인간의 상정이라 할 수 있다. 조물주는 인간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여 크게는 사회를 꾸리고 적게는 한 부락을 조성하여 집단적으로 터전을 만들어 주셨다. 우리 부락도 전서공이 터를 잡아 육백여년 동안을 훌륭하신 조상님의 얼을 계승해오고 있으며 부락의 안녕과 발전은 무진생 성황님께서 수호감사 주신 덕택으로 육백여년 긴 세월 동안 무사태평의 영애를 이루어오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타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하회부락으로 만들어 주셨다.

백 이십호의 전 부락인은 무진생 성황 신령님께 고개 숙여 빕니다. 천만년 내내 동네 농사짓는 사람에게는 연연풍년이 들게 하여 주시고 객지에 나가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는 백만장자가 되게 해주시며 부락에 사는 남녀노소는 모두 건강하며 재수대통 하게 해 주시며 120여 부락인은 상부상조로 정신으로 융화단결 하시여 이리 번창하게 해주시며 주기적으로 유행 질병을 사전에 방지해주시고 부락인의 생명수인 수도업무를 만년이 가도록 청결하게 하여 오염이 없게 해 주시옵소서.

끝으로 보잘것없는 제수이오나 정성들여 올리는 제수이오니 만반진수로 생각하시고 반가히 흡향하시기를 축원하옵니다. 상향.


동제 축문은 서낭신과 마을 사람들의 유기적 관계를 확인하는 것에서부터 나라 차원의 문제와 마을과 가정의 문제들까지 제기되고 순서대로 마무리되고 있다. 1983년 동제 축문과 2008년 동제 축문을 잘 살펴보면 당시 사회적 상황과 주민들의 소망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다. 축문에 나타나는 사회적 상황으로는 동제를 주관하는 산주에 관한 부분과 전통마을의 주민으로서 느끼는 자부심, 농촌마을로서 겪는 인구유출 등이 있다. 그리고 주민들은 서낭신에게 풍요다산(豊饒多産)과 제액초복(除厄招福), 생기복덕(生氣福德)을 빈다.

두 자료는 모두 현장에서 조사된 것이다. 제문 작성의 특징을 찾자면 주민이 직접 작성했다는 점과 순수 한글로 쓰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축문을 읽다보면 맞춤법에 어긋난 부분이 눈에 띤다. 하지만 축문은 맞춤법이 완벽한 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소망을 신에게 고하기 위한 글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