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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84호 정사 / 가옥 북촌댁
북촌댁
북촌댁

중요민속자료 제84호, 하회 706번지에 위치한 북촌댁은 양진당과 더불어 북촌을 대표한다. 석호 류도성 공이 철종 13년(1862년)에 창건한 것으로 안채와 사랑채 대문간채를 두루 갖추고 있다. 동향의 대문체를 들어서면 곧바로 사랑마당이 되고 이 마당의 우측에는 별당채가 있다. 대문간채는 정면 6간 측면 1간으로 중앙에 솟을 대문을 두고 그 좌우에 광을 두었다. 몸채는 안방과 사랑방이 대각선 방향으로 놓이면서 한 채로 연결되어 전체적으로 ‘ㅁ’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중문을 가운데 두고 좌측으로 방과 마루가 놓였으며, 그 앞으로 퇴를 내었다. 중문 좌측으로 방,마루,방이 일렬로 배열되어 있으며, 여기에서 꺾이어 안대청과 4간의 횡분활된 안방이 놓여있다. 안채는 부엌이 사랑대청과 대각선 위치의 가장 안쪽에 자리잡고 그 좌측으로 방과 마루방,방등이 놓여 사랑채와 연결되어 있다. 별당채는 일자형 평면으로 정면 6간, 측면 2간으로 방과 대청이 각각 절반씩 차지하고 있다. 사당은 정면 3간 측면 2간으로 별당과 안채 사이의 작은 문을 통해서 연결된다.

이 건물은 1862년(철종 13)에 지은 집으로 안채와 사랑채, 대문간채를 두루 갖춘 전형적인 양반집으로 중요민속자료 제84호로 지정 되어있다. 하회마을은 마을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크게 북촌과 남촌으로 나누고 그 중에서 북촌을 대표할 수 있는 집으로 양진당과 화경당을 들 수 있다. 그래서 북촌을 대표하는 집이라 하여 북촌댁이라고도 부른다. 사랑채에 걸려 있는 화경당이라는 당호는 유도성의 할아버지인 유이좌가 지었다. 건물을 보면 먼저 골목에 면한 우람한 담장과 솟을대문이 눈에 들어온다. 그 솟을대문과 좌우의 대문채가 유난히 장대하여 압도하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동향으로 앉은 이 집은 여성 공간인 안채가 남성 공간인 사랑채 보다 규모가 장대한 것이 특징이다.

북촌유거(北村幽居)

바깥 사랑채에 내걸린 현판으로 '쓸쓸하고 궁벽(窮僻)하게 북촌에 산다'는 뜻이지만, 선비가 자신의 처소를 겸손하게 표현하는 관용적인 표현이다.

수신와(須愼窩)

본채의 남쪽 사랑채에 걸려 있는 현판으로 석호 류도성 공의 별호(別號)인 수신와(須愼窩 : 모름지기 수, 삼갈 신, 움막 와 : 어려운 이웃을 의식해 언제나 삼가면서 겸손하라는 뜻)를 새긴 것이다.

화경당(和敬堂)

본채의 북쪽 사랑채에 걸려 있는 현판으로 한석봉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학서 류이좌 공의 당호이다.

헌춘문(獻春門)

사당 들어가는 문에 걸려 있는 현판으로 '조상을 모신 사당에는 첫봄에 나는 신선한 제물을 바친다'는 후손들의 마음자세를 잘 드러내고 있다.



북촌댁은 웅장한 안채가 자랑거리이다. 화산에서 내려다 보면, 가장 도드라져 보인다. 한석봉 글씨를 모각한 화경당은 솟을 대문을 들어서면서 바로 보이나 사랑 별채 문틈으로 주의 깊게 보아야 겨우 석호라는 현판을 만날 수 있다.

유난히 높고 길며 웅장한 담장으로 둘러 쌓인 넓은 터에 내 ·외별당을 갖춘 여유있는 배치가 이 집의 원래 모습이라 하겠다. 후원(後園)의 터가 넓어서 현존건물들은 전방으로 몰려있는 느낌이 든다. 북촌댁은 그 규모가 양진당과 함께 북촌의 큰집이라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