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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옷이 귀했으므로 옷이 상하지 않도록 잿물에 삶아서 빨래를 했다. 비누가 귀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보통 잿물을 만들어 사용했다. 부녀자들은 주로 하회마을 앞에 있는 화천에서 빨래를 했다. 빨랫감을 들고 강가에 가서 대충 옷을 헹궈서 때를 없앤 뒤, 집에 와서 다시 빨았다. 과거에 빨래를 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잿물이었다. 잿물을 만들려면 우선, 재를 만들어야 했다. 재를 만들기 위해 콩깍지, 서숙(조)짚을 태웠는데, 콩깍지를 태운 재가 독하고 때가 잘 빠진다고 한다. 서숙짚을 태워서 만든 재는 잿물이 잘 나오지 않고, 때가 잘 빠지지 않는다.
잿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콩깍지를 태워서 재로 만든다. 시루에 짚을 깔고, 태운 재를 넣고 물을 부으면 잿물이 나온다. 이 잿물을 빨랫감에 넣고 푹 삶은 뒤 맑은 물에 또 한 번 삶는다. 다 삶은 빨래는 꼭 짜서 빨랫줄에 널어놓는다. 겨울에는 추워서 잿물이 잘 우러나지 않는다고 한다. 잿물을 만들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물을 떠오는 것이었다. 집과 강가의 거리가 멀어서 물을 떠오는데 한참이 걸렸다고 한다. 물을 머리에 이고 올 때면 쏟는 일도 많았다. 당시에는 잿물을 만들어서 빨래를 삶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이웃에 누가 빨래를 삶는다고 하면 집집마다 급한 빨래를 대충 헹궈서 그 집 빨래와 함께 넣는다고 한다. 얼른 씻어서 가져간 뒤 빨래 위에다 얹었다. 특히 겨울에는 빨래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오늘 누구 집에 빨래 삶노?”라는 말을 종종 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솥에 삶았기 때문에 한두 벌 정도 이웃집 빨래를 넣어도 괜찮았다.
겨울에 옷을 한 번 입으면 한 달이나 한 달 반씩 입었다. 그러다보니 옷이 새까맣고, 목 뒤가 닿는 부분이 반들반들했다. 또한 무명으로 옷을 만들기 때문에 빨래할 옷을 쌓아두면 엄청났다고 한다. 겨울에 빨래하면서 생긴 일화도 있다. 겨울에는 강가의 물이 얼어붙어서 방망이로 쳐서 얼음을 파놓더라도 그 부분이 금방 얼었고, 방망이도 같이 얼어붙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다른 방망이를 가지러 집에 갔다가 다시 강가에 가보면 끓여서 가져갔던 물이 얼어있었다고 한다. 빨래를 다 하고 나서 빨랫대에 널면 얼어서 딱딱해졌다고 한다. 또한 양반 집안에는 품성이 까다로웠던 어른들이 며느리가 빨래를 해서 깨끗이 만든 옷을 더러운 물에 던져서 다시 빨래하게 만든 일도 있었다. 과거에는 비누가 없었고, 1950년대 이후 비누가 보급되기 전까지는 무척이나 귀했다고 한다. 어쩌다 친정에 가서 배급받은 비누가 있으면 하나 가져와서 쓰는데, 아껴서 오랫동안 썼다. 아무리 잿물에 씻어도 빨래의 때가 지지 않은 적도 많았는데, 비누를 사용하면 깨끗해졌다고 한다. 잿물비누라고 하는 검은 비누였다. 비누가 나온 뒤에는 잿물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편해졌다고 한다.
여러 옷감 중에서 빨래하기 어려운 옷감은 명주였다. 옷감이 좋았기 때문에 함부로 비벼서 빨지 못하고, 손으로 살살 주물러서 문질렀다. 계절 중에서도 겨울철에 입던 무명옷을 빨래하기 위해서는 무명 안에 넣은 솜을 빼내야 했다. 삼베와 모시는 세탁할 때와 다림질 할 때도 편하다고 한다. 여름에 입는 옷이기 때문에 빨래할 때 손이 시리지 않고, 빨랫감이 적다. 강가에서 빨래를 안 하게 된 것은 상수도가 들어오고 난 뒤부터였다. 상수도는 1980년대 말에 도입되었다. 식수는 가까운 우물에서 떠서 먹었는데, 일제강점기에 파놓은 우물이다. 우물에서 뜬 물은 식수로 사용했고, 빨래는 강가에서 했다. 상수도가 들어온 뒤에는 우물을 사용하지 않았고, 집에서 빨래를 하게 되었다. 하회마을의 부녀자들은 추운 겨울에 강가에 가서 빨래하기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다.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으므로 빨래하기 위한 물 떠오는 것을 반복했다. 이것을 회상하면서, 상수도는 편리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 고마운 시설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