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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260호 서원(사적) 병산서원

고려시대 안동의 풍산현에는 풍악서당이 있었다. 지방의 많은 유생들이 이곳에 모여 공부하였는데, 고려 말 홍건적의 난이 일어 공민왕의 행차가 풍산을 지날 때 이 모습을 보고 감동하여 많은 서책과 사패지(賜牌地)를 주어 유생들이 더욱 학문에 열중하도록 격려하였다. 이러한 일이 있은 지 약 200년 후 서당 가까이 집들이 많이 생기고 주위가 시끄러워지면서 1572년 서당을 병산으로 옮기고 병산서당이라 고쳐 불렀다.

이후 임진왜란으로 불 탄 서당을 1607년에 다시 중건하였고 1613년 서애 류성룡 선생을 배향하는 '존덕사'를 건립하였다. 1629년 서애 선생의 셋째 아들 수암 류진 공을 배향했다. 1863년(철종 14) ‘병산’이란 사액(賜額)을 받았으며 이로 인해 1868년(고종5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사라지지 않은 47개 서원 중 하나가 되었다. 안동지방에 남은 2개소 중 한 곳이 바로 병산서원이다. 매년 3월과 9월 초정일(初丁日)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병산서원에 있던 많은 서책과 고문서들은 일괄 하회 충효당 내 영모각에 보관되어 있고 다수의 목판도 종택에 별도 보관되고 있다. 이들 중 고문서는 『고문서집성』 20 「병산서원편」으로 1994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영인하여 간행되었다.

이후 일제시대의 어려움을 넘긴 병산서원은 해방 후에 서원 본래의 교육기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옛 모습의 서원 형태로는 곤란하다는 데 뜻을 모으고 신교육기관으로 학교를 설립하게 되었다. 공민왕으로부터 받은 사패지와 기타 서원 소유의 전답과 임야 등 서원의 전 재산을 기금으로 하여 학교법인 '병산교육재단'을 만들고 풍산읍 안교동에 병산중학교를 설립하였고, 다시 고등학교를 병설하여 풍산종합고등학교를 개교하였다. 지금의 풍산중학교와 풍산종고의 역사적 뿌리는 고려 때의 풍악서당에까지 거슬러 을라가며, 그 뜻은 학문을 숭상한 서애의 호학정신(好學精神)에서부터 비롯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