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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종택
귀촌종택
귀촌종택

풍산류씨 귀촌파의 종택으로 사당에는 귀촌 류경심 공의 불천위 위패가 모셔져 있다. 귀촌공의 모부인 정부인 영남남씨와 자부 공인 문소김씨 모두 열녀로서 정려비가 마을 입구에 있다. 서애선생의 6대손인 임여재(1730-1808)공이 1770년(영조46년)경에 지은 것으로 하회마을 중심 네거리길 동남쪽 모퉁이에 자리하고 있다. 행랑채, 문간채, 사랑채, 안채가 인접하여 'ㅁ'자형 평면구성을 이루고 있다. 막돌 기단에 방주를 세우고, 소로 받침 없이 납도리를 받히고 있으며, 8채의 모든 건물이 독립된 건물로서 모두 맞배지붕이고, 방을 한 칸씩만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류경심(柳景深, 1516-1571) 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풍산(豊山)이고 자는 태호(太浩), 호는 귀촌(龜村)이다. 지평(持平) 공권(公權)의 아들이자 겸암과 서애의 종숙(從叔)이다. 1544년(중종 39) 생원으로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정자(正字)를 지내고, 1546년(명종 1)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로서 문과중시에 장원하고, 이듬해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으로서 양재역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에 연루되어 파직되었다. 1551년(명종 6) 다시 기용되어 회인현감(懷仁縣監)이 되고, 이어 정주목사(定州牧使)·회령부사(會寧府使)·함경북도절도사(咸鏡北道節度使)·종성부사(鐘城府使)·광주목사(光州牧使) 등을 역임하였으며, 1568년(선조 1) 호조참판(戶曹參判)으로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후 예조참판(禮曹參判)·대사헌(大司憲)을 역임하고, 평안도관찰사(平安道觀察使)를 제수 받고 부임했다가 병을 얻어 돌아오던 중에 경기도 장단(長湍) 초현리에서 돌아가셨다. 외향인 일직(一直) 귀미(龜尾)에 살았다. 묘소는 서후면 능동재사 뒤 합폄. 풍천(豊川) 낙고사(洛皐祠)에 제향되었으며, 문집에『귀촌집(龜村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