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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줄불놀이
선유줄불놀이를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위치는 부용대 앞 배 위에서이다. 뱃놀이와 불놀이를 동시에 즐기는 것이다.
선유줄불놀이를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위치는 부용대 앞 배 위에서이다. 뱃놀이와 불놀이를 동시에 즐기는 것이다.

선유줄불놀이는 매년 음력 7. 16일 기망(旣望)일에 하회마을에서 펼쳐지는 양반중심의 놀이다. 숯가루가 든 봉지를 긴 줄에 매어 부용대 절벽과 그 앞 만송정에 이어놓고 불을 붙여 뱃놀이와 함께 즐긴 데서 그 명칭이 유래되었다. 이 놀이는 기원이 확실하지 않으나 서애 유성룡이 벼슬을 그만두고 하회로 내려와 형인 겸암 유운룡과 뱃놀이를 즐긴 데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다른 설에는 서애 선생의 부친인 관찰사 류중영 공 이전부터 행하였다고도 한다. 놀이에 필요한 제반 경비는 풍산 류씨 문중에서 모두 부담하며 이에 필요한 준비는 서민들이 담당하였다. 일반 민중이 중심이 되는 하회별신굿과 달리 양반중심의 놀이로서 서로 대조를 이룬다.

하회마을에서는 음력 7월 16일이면 선유줄불놀이를 해왔다. 조선 후기 이후 경제적인 이유로 한 때 전승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광복 이후 몇 차례 연행하다가 1990년대 후반 이후 꾸준히 시연되고 있다. 최근에는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기간 중 하회마을에서 지속적으로 연행되고 있다. 지금까지 선유줄불놀이가 연행된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광복 후 미군정하에서 하회마을에서 연행


○ 1968년 제1회 안동풍년제 때 하회마을에서 연행


○ 1975년 국내 외국사절단 일행의 요청에 의해 하회마을에서 연행


○ 1981년 안동민속문화축제 때 안동공업고등학교 학생들에 의해 안동댐에서 연행


○ 1990년 안동민속문화축제 때 풍산중학교와 풍산고등학교 학생들이 하회마을에서 연행


○ 1991년 5월 28일 풍산중학교와 풍산고등학교 학생들이 연이어 연행


○ 1997년 10월 1일부터 3일까지 열린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97’의 일환으로 하회마을에서 연행


이 후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행사의 일환으로 자리잡아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다.


선유줄불놀이는 줄불놀이· 달걀불놀이· 낙화놀이 · 뱃놀이 네 가지 놀이로 이루어진다. 요즘 관광객들에 의해 각광받고 있는 것은 앞의 세 놀이지만 본래 이 선유줄불놀이는 양반들의 뱃놀이가 중심이며 나머지는 뱃놀이의 흥취를 더하기 위한 부대적인 요소였다. 부용대와 낙동강 그리고 만송정을 잇는 천혜의 자연 풍광을 이용하여 선비들이 시회(詩會)를 할 때 불놀이를 곁들인 것이다.

줄불놀이는 숯가루를 봉지에 담아 줄에 매단 뒤 불을 붙여 감상하며 즐기는 놀이를 말한다. 줄불놀이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뽕나무 숯과 소나무 껍질 숯을 소금과 함께 잘 섞어서 지름 5cm, 길이 40-50cm의 봉지에 잘 담아야 한다. 내용물이 잘 담긴 봉지는 약 2-3cm 간격으로 잘 묶어놓는다. 이렇게 묶어 놓아야 숯이 한꺼번에 쏟아지지 않고 오래도록 타며 강물로 흘러내린다. 숯을 두 가지로 섞어 쓰는 까닭은 화력과 관련이 있다. 소나무 숯은 화력이 좋지만 금방 타버려서 줄불이 오래도록 지속되지 못한다. 이에 비해 뽕나무 숯은 화력은 소나무 숯보다 떨어져도 지속성이 훨씬 좋아 오래도록 타기 때문에 이 둘을 섞어서 사용하는 것이다. 불을 붙이는 심지 역할은 말린 약쑥이다.

숯을 담은 봉지가 모두 준비되면 줄을 설치한다. 먼저 부용대와 만송정 사이에 줄을 몇 가닥 걸어 놓는다. 부용대와 만송정 사이는 약 200여미터 거리이므로 400미터 정도 되는 줄을 준비해야 한다. 이 줄을 반으로 접어 두 가닥으로 양쪽을 연결하면 줄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이는 우물에서 도르레를 이용해 줄을 끌어올리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러한 줄은 당 해의 경제적인 여건과 맞물려 세 줄 내지 다섯 줄, 많으면 일곱 줄을 부채살 모양으로 설치한다. 줄이 설치되면 숯을 담은 봉지를 약 4-5m 간격으로 매달아 불을 붙여 부용대 방향으로 끌어올린다. 심지 역할을 하는 약쑥에 불을 붙이고 천천히 끌어 올리면 불꽃이 강물 위에 떨어지며 일대 장관을 이룬다. 숯이 들어있는 봉지 하나가 다 타는 시간은 약 2시간이 소요된다고 하며 이 봉지가 다 올라가는 데는 약 30여분이 걸리므로 줄불놀이는 약 2시간 30여분 가량 지속된다.

달걀불놀이를 하기 위해서는 달걀껍질을 미리 준비해 둬야 한다. 짚으로 만든 따방이(그릇모양의 도구)에 달걀껍질을 얹고 그 속에 피마자기름을 채운다. 그리고 그 안에 한지로 만든 돌심지를 연결하고 불을 붙여 부용대 위쪽 형제암 부근에서 한 번에 25~30개를 띄워 보낸다. 띄워 보낸 달걀불은 왕연정 앞 소를 향하여 서서히 떠내려 오면서 맵돌고 섯도는 모습이 마치 불오리가 떼를 지어 모이를 찾는 듯하다. 이렇게 몇 차례 달걀불을 계속해서 떠내려 보낸다. 지금은 달걀껍질 대신 바가지 속에 등유를 먹인 솜뭉치를 철사로 묶어 사용한다.

낙화놀이 역시 줄불놀이와 달걀불놀이처럼 불놀이의 일종이며 보다 더 간단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놀이다. 낙화놀이는 솔갑단(소나무 마른가지)과 소나무장작에 불을 붙여 부용대 절벽 위에서 강물 위쪽으로 던지는 놀이다. 이 때 불을 던지기 전에 “낙화야”라고 소리치며 불을 떨어뜨린다.

뱃놀이는 앞의 불놀이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선유줄불놀이의 중심 놀이다. 선유는 뱃놀이를 가리키는 말로써 크고 작은 배에 호롱을 달고 수십 명의 젊은 선비들이 기생들과 함께 주연과 시회, 그리고 춤과 노래로 마음껏 즐기는 놀이다. 하회마을에서는 선유의 흥취를 더하기 위해 불놀이를 더한 것이다. 먼저 선유를 즐기기 위해서 하회마을과 인근의 묵객시인들이 계선암에 매두었던 배를 타고 능파대 앞을 돌아 추월담을 거쳐 달관대를 바라보며 형제암까지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가 비스듬하게 뱃머리를 돌려서 강 중심에 배를 멈추고 술잔을 나누었다. 이 무렵 부용대와 강 건너 만송정에서 줄불이 올라 강물 위를 화려하고 은은하게 비추었다. 또한 달걀불이 강물을 타고 내려오면 옥연장사 앞의 소에 이를 때까지 시 한 수를 짓는 놀이를 펼쳤다. 이 때 시간 안에 시를 마무리하면 ‘낙화야’하고 크게 소리쳤다고 한다. 그리고 이 소리를 신호로 부용대에서 준비된 불붙인 솔갑단과 장작불이 절벽을 타고 강물을 향해 떨어졌다.

이 네 가지의 놀이를 모두 합해 선유줄불놀이라고 칭한다. 하회에서 펼쳐진 이 놀이에는 풍산 류씨와 일부 양반들만 참석할 수 있었으며 마을의 다른 타성(각성받이)들은 참석할 수 없었다. 다른 타성들은 놀이에 참석하지는 못하는 대신 양반들이 뱃놀이를 잘 즐길 수 있도록 준비해야만 했다.

위에서 살펴본 선유줄불놀이는 양반들의 놀이문화로서 일반 민중들의 문화인 하회별신굿과 크게 대조적이다. 별신굿이 신앙성이 강조된다면 선유줄불놀이는 자연을 벗삼아 경치를 즐기며 사회·경제적 특권을 향유하고 풍류를 과시했던 양반들만의 문화 분출욕구가 강한 놀이문화이다. 또한 하회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경관과 잘 어우러져 발달한 놀이다. 선유줄불놀이는 한 때 전승이 중단되기도 하였지만 최근에는 매년 10월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행사의 일환으로 선유줄불놀이가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