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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 문소김씨 정려각
하회마을 입구 큰 고개 왼편으로 정부인 영양 남씨와 그의 손부인 문소 김씨 정려각이 세워져 있다. ‘정려각’은 충신이나 효자, 열녀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인데, 일반적으로 각이 먼저 세워지고, 각이 세워진 유래를 나중에 비를 세워 적어두게 된다.
풍산 류씨 11세인 공권의 처인 영양 남씨는 진사 남팔준의 딸로 남편이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연경 옥화관에서 병으로 세상을 뜨자, 눈물로 삼년상을 치르고 병이 나게 된다. 병석에 누워서도 약을 먹지 않고, 맏아들 류경심을 불러 “오늘까지 죽지 않고 살아온 것은 너희들이 장성하기를 기다린 까닭이다”라고 말하고, 음식 먹기를 거부하다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 일이 조정에 알려져 1567년 명종 22년에 열녀비를 세우게 된다.
영양 남씨 손부인 문소 김씨는 개암 김우굉의 딸로서, 남편 성귀가 세상을 떠나 운구 행렬이 강 한가운데 이르렀을 때 바람이 불어 배가 뒤집히려 하자 부인이 물에 뛰어내리려 했다. 부인의 이런 행동은 바람을 잠재우고, 무사히 운구하니 모두가 부인의 정성을 칭송했다고 한다. 장례를 치른 뒤 〈주자가례〉를 벽에 붙이고 이를 실천해 나갔다. 나날을 애통해 하던 부인이 병석에 누어 주위 사람들을 불러 “저는 남편을 따라가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35의 생을 마감하게 된다. 1610년(광해군 2년) 되던 해 열녀각과 비가 세워지게 된다. 하회마을 사람들은 한 집안에 열녀가 2명이나 나기 힘들다며 칭송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1989년 1월 20일 지금의 위치로 이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