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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낭당
1939년 하회마을 입구의 모습이다.
1939년 하회마을 입구의 모습이다.

서낭당은 화산 중턱에 마을을 내려다보듯이 자리 잡고 있다. 서낭당에는 무진생(戊辰生) 의성 김씨 처녀가 모셔져 있다고 전해진다. 사람들은 '김씨 할매' 또는 '무진생 서낭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허도령 전설에서 그의 죽음을 슬퍼하다 죽음에 이른 처녀가 바로 지금의 서낭신이라고 한다. 그런데 서낭신의 정체에 대해서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근거로 학자들마다 제각기 다르게 보고하고 있다.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에 의하면 무진생 의성 오토산(五土山) 김씨라는 여자가 15살에 남편과 사별한 뒤 하회의 서낭신이 되었다고 하는가 하면, 김택규 교수는 이웃 마을 월애(月涯) 다릿골에 살던 처자가 어느 곳으로 시집갔다가 죽어서 신이 되어서 옥류동(玉流洞)에 좌정했다가 다시 하회의 서낭당에 옮겨와 서낭신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도 1960년을 전후로 조사된 것이고, 공동체 신앙에 대한 믿음이 약해진 지금은 이러한 내용을 알고 있는 주민들을 만나기 힘들다. 하지만 사람들은 매년 정월 대보름날 서낭당에서 마을의 안녕과 복을 비는 동제를 지낸다. 수백 년 동안 내려오는 공동체신앙의 전통이 서낭당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낭당은 초가집 형태로 지어졌는데 당을 마주보았을 때, 뒷면과 왼쪽 면은 어른 키 높이까지 벽으로 막혀있고 지붕과 맞닿은 부분이 조금 뚫려있다. 오른쪽 면은 전체 높이의 반쯤 뚫려있다. 그리고 전면은 벽이 없는 형태로 당의 내부를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다. 내부의 허리 높이쯤에는 폭이 40cm가량 되는 선반이 가로질러 있는데, 정월 대보름 동제를 지낼 때 제단으로 사용된다. 선반 앞에는 동제 때 사용하는 향로와 기름종지를 얹는 향로상(香爐床)이 놓여 있다.

하회는 공동체신앙에 대한 믿음이 약화되면서 서낭신의 내력을 담고 있는 당신화가 온전히 계승되지 못했다. 간신히 허도령 전설이 전승되어 학자들이 기록하게 되면서 서낭신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다. 불분명한 서낭신의 정체이지만 아직까지 동제에서 가장 중요한 신이 서낭신이요, 가장 중요한 당은 서낭당으로 여겨진다. 즉, 서낭당의 중요성은 서낭신의 정체와 동제의 전통에서 나타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