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와역사
종가문화
종가의 역사
종가의 혈통
충효당 계보도
서애 류성룡에서 현종손에 이르기까지
충효당(忠孝堂) 종가의 시조인 류성룡은 류중영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형인 류운룡이 양진당 종가를 이어받고, 류성룡은 분가를 함으로써 충효당 종가가 형성되었다. 류성룡은 퇴계의 문인으로 태어날 때부터 자질이 뛰어나 퇴계는 ‘이 아이는 하늘이 내린 아이다’라고 일컬을 정도로 칭찬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전한다. 1558년 세종대왕의 아들 광평대군 5세손인 이경(李坰)의 딸과 혼인을 하였다. 1570년 선조시절 일정기간 공직을 떠나 학문에만 전념할 수 있는 사가독서(賜暇讀書)의 어명을 받았으며, 1586년에는 부용대 동쪽에 옥연정사를 지었다. |
이후 1591년 좌의정과 이조판서가 되었으며 그해 2월에는 조정의 반대를 물리치고 왜국이 침공할 조짐이 있음을 명나라에 통고하였다. 1593년 1월에 평양을 탈환했으며 10월에는 한양을 회복하고 영의정에 올랐다. 그러나 1598년 북인세력의 탄핵으로 인해 영의정에서 물러난 후 고향인 하회마을로 돌아왔다. 1604년 옥연정사에서 임진왜란의 회고록인 징비록(懲毖錄)을 저술하기도 했다. 현재 하회마을 입구에 위치한 병산서원에 배향되어 있으며, 불천위로 지정되어 충효당 종택의 사당에 모셔져 있다. 류성룡은 아들 형제를 두었는데, 충효당 종가는 차남 류여의 혈통을 잇고 있다. 족보에 따르면 장남 류위는 절손되었으며, 묘소는 경기도 광주에 자리하고 있다. 류여의 장남 류원지는 서후면 금계리 의성김씨 학봉 종가의 김시추(金是樞)의 사위로서, 학봉 김성일에게는 손서(孫壻)가 된다. 이후 충효당 종가는 현종손 류영하에 이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