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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서원
화천서원
화천서원

문경공 겸암 류운룡 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서 하회마을 북쪽 광덕리 16-2번지에 유림들이 세운 서원이다. 정조 10년(1786년)에 건립하여 그해 9월 겸암 선생의 위폐를 봉안하고 제자인 동리 류원지공을 배향시켜 100여년 이상 춘추로 향사를 지내오다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이를 아쉬워하던 후손들은 1966년부터 기금을 모아 건물을 짓고 유림의 공론을 모아 1996년 5월 2일 복설고유를 거행하였다. 서원 규모는 사당 6간, 삼문 3간, 강당 15간, 동서재 각 4간 반, 문루 10간, 전사청 3간 외에 주소 8간, 원문 1동이다.

문경공(文敬公) 겸암(謙菴) 류운룡[柳雲龍, 1539년(중종34)-1601년(선조34)] 선생을 제향하는 서원으로는 풍기의 우곡서원(愚谷書院)과 이곳 화천서원(花川書院) 두 곳이 있다. 겸암선생이 1601년 향년 63세를 일기로 돌아가시고 185년 만인 1786년(정조10년) 9월에 경세제민(經世濟民)의 포부를 구현하지는 못했지만 가학(家學)에서 득력(得力)했던 성실봉사를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고, 동방의 도학적전(道學嫡傳)인 퇴계 이황(退溪 李 滉)선생의 삶을 희구하였으며 깨끗한 선비정신과 우애(友愛)와 효도(孝道)를 실천한 선생의 학덕을 기리던 유림이 뜻을 모아 서원에 묘우인 경덕사(景德祠)롤 세우고 위패를 모시면서부터 제향이 시작되었다. 그 18년뒤인 1803년(순조3) 동리(東籬) 김윤안[1560년(명종15)-1622년(광해14)] 선생과 졸재(抽齋) 류원지[柳元之, 1598년(선조3l)-1674년(현종15)] 선생을 겸암 선생의 위패 옆에 종향하였으며, 두 분은 사제 관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