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한국국학진흥원

하회의모든것

사회와역사

종가문화
종손과 종부의 삶
양진당
종손과 종부 진성이씨

양진당 16대 종손 류상붕(柳相鵬, 1951년생)씨. 울산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퇴직하여 종택으로 돌아온 지 4년째이다. 학업으로 종택을 떠나고 나서 그야말로 50년 만에 돌아왔는지라 아직 무엇이든 손에 익지 않다. 종부 진성이씨도 마찬가지다. 시집와서 종손을 따라 객지생활을 한 탓에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다.

종손은 1951년 부친인 15대 종손 류한상씨(1985년 작고)와 노종부 선산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종손이 태어나던 날, 딸 셋을 내리 낳고 귀하게 얻은 아들인지라 온 마을이 떠들썩했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던 큰누나는 어머니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기쁜 마음에 교실 창문을 타넘어 집으로 달려왔다. 그리고는 방으로 들어와서 “정말, 아들이라?”하고는 이불을 젖히고는 직접 확인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53년과 58년에 남동생 둘이 연이어 태어났다.

안동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강원도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1976년에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이듬해인 1977년 풍산금속에 들어갔다. 같은 해 11월에는 안동 시내에 위치한 안동예식장에서 지금의 종부와 혼례식을 올렸다. 추석 2주 전쯤 맞선을 보라는 어른들의 말씀에 신시장 어느 다방에서 종부를 만나고는 추석을 쇠고 나서 결정하겠다고 하니, 작고하신 선친께서 무조건 마음을 정하라고 종용하는 바람에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혼사를 정했다. 물론 종손 역시 반듯한 용모의 종부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지만, 즉석에서 결정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종부 진성이씨는 향산 이만도(李晩燾) 선생의 후손이다. 그리고는 곧장 영호루로 데이트 갔다가 종손을 직장이 있던 안강으로 돌아가고 11월에 혼례를 올린 것이다.

1979년 11월에 차종손이 태어나고, 이듬해 12월에는 선친이 작고하셨다. 9일장에 3년상을 치렀다. 당시 종손은 울산에 살고 있었는데, 빈소를 지키는 일은 아우가 대신해주었지만 초하루와 보름 상식이 되면 기차와 버스를 번갈아 타면서 종택으로 돌아왔다. 만 2년동안 하루도 거르는 법이 없었다. 선친이 작고하고 나니, 종택 살림을 도맡아하게 되었다. 30살의 젊은 나이, 게다가 객지생활을 주로 했던 탓에 문중 어르신들과의 긴밀한 소통을 거의 하지 않았던 종손에게는 벅찬 짐이 되었다. 하지만 입암 류중영 선생과 겸암 류운룡 선생의 불천위 제사, 설과 중구 차례, 묘제 등이 돌아올 때마다 그 먼 길을 달려왔다. 저녁 6시 퇴근하자마자 울산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경주로 가서, 그곳에서 다시 영천행 버스를 탔다. 그리고 영천에서 기차를 타고 안동에 도착해서는 택시를 타고 종택에 도착하면 밤 11시가 되었다. 새벽 1시에 제사를 모시고 음복을 하자마자 2시 30분에 택시를 타고 안동기차역까지 오면 새벽 3시발 부산행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이른 아침 울산에 도착하여 집에 잠시 들러 옷을 갈아입고는 출근을 하는 생활을 25년 동안 계속했다. 지금까지 불천위 제사에 불참한 적이 딱 한번 있었다. 겸암할배의 비위, 곧 겸암할매 제사를 모시는 날 몸이 너무나 아파 오지 못했던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종택을 떠나 그야말로 50년 만에 돌아온 종손은 눈 코 뜰새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특히 집을 떠나 생활하다 보니 어르신들로부터 한학을 배울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런데 크고 작은 행사에 가서 시도록(時到錄)을 작성할 때 타가문의 종손들의 붓글씨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래서 3년 전부터 서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런가 하면 사람들과 어울리다보면 자연스럽게 가문 간의 세의(世誼)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런데 객지생활을 오래한 탓에 타가문의 친족네트워크를 연결하는 데에 아직도 서툴다. 상대방의 성씨와 출신지역을 듣고는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이름이 줄줄이 나와야하는데, 그 방대한 지식을 하루아침에 익히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요즈음에는 타가문의 계보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그야말로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혹독한 ‘종손 수업’을 받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