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한국국학진흥원

하회의모든것

사회와역사

역사와유적
유적
중요민속자료
중요민속자료86호 빈연정사
빈연정사

이 건물은 퇴계 선생의 제자로 원주목사를 지낸 겸암 류운룡 선생(1539∼1601)이 서재로 사용하던 집이다. 조선 선조 16년(1583)경에 지었다고 하며 하회마을 북촌의 서북편 겸암정과 부용대를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집 이름은 부용대 절벽 아래 깊은 곳을 ‘빈연’이라 부른데서 따왔다고 한다.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왼쪽에 앞면 1칸·옆면 2칸의 온돌방을 두고 나머지는 대청으로 꾸몄다. 대청 앞면 2칸은 문을 달지 않았으며 옆면과 뒷면에 골판문을 달았다.

주변 경치와 조경이 뛰어난 곳에 자리잡고 있어 넉넉한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북촌의 서북편, 국민학교 서쪽 대지에 위치한다. 원지정사(遠志精舍)와 동 ·서로 상거(相距)해 있고 약간의 거리가 있으므로 송림(松林)과 강류(江流)를 굽어보게 됨은 물론 그 너머로 겸암정(謙菴亭)과 부용대(芙蓉臺)를 조망할 수 있는 승구(勝區)를 형성한다. 집은 길이가 3간에 겹집(양통(兩通))이며 동쪽 2간이 온돌(溫突)이고 서쪽 4간이 대청(大廳)이다. 온돌은 사방에 문호가 달렸으며 대청쪽에는 불발기 분합들문, 전면에 띠살분합, 측면, 후면은 각간(各間) 외짝 여닫이를 달았다.

대청의 전면 2간은 문호없이 개방되고 옆면과 뒷면 각간에는 판장분합이 달려 있다. 기둥은 모두 방주(方柱)이나 대청 전면 중심주만은 원주(圓柱)여서 원지정사의 경우보다 전면 치장은 덜한 셈이다. 주간(柱間)은 대청이 7척, 온돌이 8척으로 온돌간이 좀더 넓게 잡혀 있다. 그러나 이 집이 대청에 비중을 크게 둔 것은 원지정사의 경우와는 반대이다. 홑처마에 지붕은 팔작이고 사주(四周)에 불방정(不方整)의 토담을 돌렸다. 이 집도 정사인 점에서 원지정사와 같은 목적에서 지어진 것으로 생각되지만 창건자가 서애(西厓)인지는 알 수 없으며 건축시기도 상세히 전하지 않고 있다. 역시 서애의 직계손의 소유이므로 서애나 서애 이후의 학풍전수와 관련된 유적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