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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전서공
공조전서 입향 기적비

 전서공(典書公) 류종혜(柳從惠)는 여러 번의 답사 끝에 하회에 들어올 수 있었다. 허씨와 안씨들의 묘지를 피해 화천(化川)가에 집을 지으려고 했는데 기둥이 거듭해서 쓰러졌다. 어느 날 전서공은 신령의 계시를 받고 3년 동안 만인적선을 했다. 그러자 더 이상 기둥이 쓰러지지 않았고 집을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전서공은 여러 번의 답사 끝에 하회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는 화산 주변의 허씨와 안씨의 묘지를 피하여 울창한 숲을 헤치고 절 근처에 집을 지으려고 했다. 몇 번씩 집짓기를 시도했지만 집은 완성이 채 되기도 전에 무너졌다. 근처를 지나가던 도사는 전서공에게 "아직 이 땅을 가질 운세가 아니니, 꼭 이 땅을 가지고 싶다면 앞으로 3년간 덕을 쌓고 적선을 해야 할 것"이라고 일러 주었다. 이에 큰고개 밖에 정자를 지어 놓고 식량과 옷가지, 짚신 등을 마련하여 3년 동안 인근 주민과 나그네들을 먹이고 입히며 적선했다. 그런 뒤에 집을 짓자 더 이상 무너지지 않았다. 그 때 집을 이룬 것이 지금 양진당의 사랑채 일부라고 한다.

주민들의 이야기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전서공이 하회에 터를 잡고자 양진당 자리에 집을 지었다. 그런데 집을 지어놓으면 밤새 무너지기를 반복했다. 어느 날 전서공의 꿈에 도사가 나타나 말하기를 "이 터에 집을 지으려면 마을로 들어오는 고갯길에서 3년 동안 만인(萬人)에게 적선을 하라."고 했다. 전서공은 큰 고개에다 원두막을 짓고 길 가는 사람들에게 적선하고 집을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전서공이 많은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풀고 길지에 마을을 이루어 발복(發福)한 까닭일까? 하회에 터 잡은 풍산 류씨는 점차 가문이 번성했다. 반면에 화산 기슭에 터를 이루었던 허씨와 안씨는 상대적으로 문중이 위축되어 하회를 떠나는 사람이 늘어나게 되었다. 결국 하회마을은 허씨와 안씨의 터전이었던 화산 기슭에서 화천가에 자리 잡은 류씨들의 터전으로 중심을 이동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통해 풍산 류씨의 입향사와 허씨와 안씨, 류씨로 이어지는 세거사를 알 수 있다. 전서공이 밀림지대였던 화천가에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과 집을 지으려 했을 때 거듭 무너졌다는 이야기, 하회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풀었다는 이야기는 선주민(先住民)과 이주민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허씨와 안씨, 그리고 절이 터 잡고 있는 화산자락에 들어와서 살려고 하니 류씨들이 터 잡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어려움이 집의 훼손 과정에서 나타난다. 집을 지을 수 없다는 것은 마을에 터를 잡고 살 수 없다는 뜻이며, 다 지어놓은 집이 부서졌다는 것은 누군가 의도적으로 집을 짓지 못하도록 행패를 부렸다는 뜻이 되겠다. 그것은 마을의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두 성씨의 세력 탓이 아닌가 한다. 선주민 세력들이 기득권을 내세워 받아들이지 않게 되면 신참이나 다름없는 류씨들이 쉽사리 마을에 들어와 자리 잡을 수 없다. 그렇다면 마을에 새로이 들어와 살려는 집단으로서 통과의례를 거칠만하다. 그것은 도사의 계시로 나타난다. 하회로 들어오는 고갯길에서 적선하는 것은 곧 하회에 터 잡고 사는 선주민 세력들에게 전적으로 봉사하는 셈이다. 신참자로서 선주민들에게 오랫동안 봉사를 한 뒤, 마침내 그들의 동의를 얻어 지금의 터에 마을을 이룩하게 된 것이 오늘의 하회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