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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송정

풍수지리적으로 볼 때 하회마을 동쪽에 있는 화산(현무)이 주산이 되며, 서쪽의 원지산(주작)이 안산의 역할을, 마을의 남쪽과 북쪽에 각각 남산(청룡)과 부용대(백호)가 위치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혈에 해당하는 삼신당까지, 명당의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여기에 하나 덧붙여 북서쪽의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만송정’을 조성했다고 한다. 만송정은 비보숲인 동시에 방풍림, 방수림 구실까지 해 준다. 하회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 완벽한 입지를 가지고 있으나, 북서쪽은 산이 낮아 북풍을 막아주지 못한다. 이런 자연조건을 보완하기 위해서 만송정을 조성했다는 의견이 있고, 화천의 범람을 막기 위함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김택규 교수는 “마을의 불화를 막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여름철 만송정은 여행에 지친 관광객의 쉼터로도 그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

마을 건너 부용대에 올라 보면, 만송정의 아름다움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마을 앞의 백사장과 맑은 강물, 그리고 푸른 솔숲의 어울림은 자연이 준 선물이라 생각할 정도로 장관을 이룬다. 만송정은 겸암선생이 젊었을 때 1만 그루의 소나무를 심어 조성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실제 1만 그루를 심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많은 소나무를 심었다는 의미로 만송정이라 했다는 설도 있다. 현재에 조성된 숲은 백년 전에 다시 심은 소나무가 대부분이다. 숲 속에 세워져 있는 만송정비(萬松亭碑, 1983년 건립)에 따르면, 조선 선조 중엽 겸암이 소나무 1만주를 손수 심고 숲을 가꾸어 소요자적하며 '만송정(萬松亭)'이라 이름 지었다고 적고 있다. 또한 조선 숙종 때 겸암의 현손(玄孫)이 숙부를 위해 작은 정자 하나를 만들었으나 큰 홍수로 유실되었으며, 현재의 솔숲은 1983년 당시를 기준으로 76년 전에 다시 심은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